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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저작권협회 제25대 회장 선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 배경에는 단순한 내부 권력 교체 이상의 이유가 있다. K-POP은 이제 세계 음악 시장을 주도하지만, 정작 이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들은 여전히 낡고 허술한 저작권 체계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중국 K-팝 저작권료 증발 사태는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텐센트가 이미 저작권료를 지급했음에도, 창작자에게는 단 한 푼도 돌아오지 않은 채 중간 퍼블리셔가 돈을 가로챘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니라 분노의 대상이다. 또한 K-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OTT 플랫폼으로부터 한국 작가들이 받는 저작권료가 ‘0원’이라는 현실은 이 나라의 음악 산업 구조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단순히 회장 한 명을 뽑는 절차가 아니라, 한국 음악 산업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창작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받는 시대를 열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중대 분기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선거의 중심에 선 두 후보 김형석과 이시하는 서로 다른 경험과 비전을 가지고 있으나, 공통적으로 ‘지금의 협회는 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기호1번 김형석(사진 왼쪽)과 기호2번 이시하

1400여 곡의 저작권을 보유한 김형석 후보는 오랜 기간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을 이끌어온 창작자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협회를 글로벌 플랫폼 중심의 조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해외 징수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는 K-MLC(Global Music Licensing Center) 구축을 약속했다. 스트리밍, SNS, OTT에 이르는 글로벌 저작권료 누락 문제는 지금까지 누구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김형석은 이를 기술 기반 정산 시스템으로 해결해 창작자들이 해외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동시에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 회계 실시간 공개, 외부 회계법인 검증 등 협회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고 주장하며, “약속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에게 있어 협회는 더 이상 ‘징수 기관’이 아니라 창작자를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하는 조직이다.

반면 이시하 후보는 협회 내부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한 실무형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지난 4년간 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내부의 불투명성과 구조적 문제를 직접 지켜본 인물이다. 특히 중국 저작권료 실종 사건을 국정감사에서 공개 증언하며 “작가가 받을 돈이 중간에서 사라졌다”고 폭로한 장면은 많은 창작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협회 내부에서 직접 보고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내부의 불투명성을 걷어내겠다”고 강조하며 개혁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언론인 출신 작곡가 정찬우 이사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선정해 ‘내부개혁 라인’을 구축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문제는 협회가 직면한 위기가 단순히 특정 사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국 저작권료 증발 사건, OTT 정산 0원 사태, SNS 음악 사용 폭증, 생성AI의 등장, 스트리밍 단가의 지속적 하락, 유통 구조의 불투명성, 창작자 복지의 빈약함, 협회 운영의 비공개 구조까지… 이 모든 문제는 서로 얽혀 있으며, 하나라도 해결하지 못하면 또 다른 손실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이 선거는 ‘누가 더 유명한가’가 아니라 ‘누가 진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사 후보 역시 전례 없이 치열하다. 다양한 장르, 세대, 경력을 가진 후보들이 대거 출마하며 협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이해관계가 선거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감사 후보까지 모두 포함된 이번 선거는 한국 음악 산업의 전체 지형을 대표하는 거대한 단면처럼 보인다. 이는 협회의 변화에 대한 업계의 요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그동안 음저협은 구성원들 사이에서 “폐쇄적이다”, “불투명하다”, “문제를 알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전임 집행부를 둘러싼 여러 소문과 잡음은 회원들의 불신을 더욱 키웠다.

이번 선거에서 협회 내부 경험을 바탕으로 개혁을 주장하는 이시하 후보가 부각되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협회 내에서 오랜 기간 직원을 만나고 내부 구조를 직접 파악해온 사람이기에, ‘지금 당장 손대야 할 문제’를 가장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김형석 후보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글로벌 음악 시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산업 전체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창작자 복지, 기술 기반 정산 시스템, 글로벌 징수 개혁 등은 업계가 수십 년간 바라온 과제였다. 그가 제시한 비전은 K-팝의 세계적 위상과 연동되는 실질적 해결책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이번 선거의 본질은 ‘누가 협회를 새 시대의 기준에 맞게 재건할 수 있는가’다. 한국 음악은 세계 무대에서 날아오르고 있지만,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들은 여전히 낡은 제도 속에서 소외되고 있다. 협회는 단순한 관리 기관이 아니라 창작자의 생계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제는 인기나 명성보다 철저한 구조 개혁 능력과 실행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 음악의 가치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만큼, 이 나라의 창작자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이번 제25대 회장 선거다. 협회가 새 시대의 음악 생태계를 이끌 리더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또 4년을 허비하느냐의 갈림길이 지금 눈앞에 놓여 있다.

선택의 결과는 결국 음악을 만드는 모든 이들의 삶을 바꿀 것이다. 대한민국 음악의 미래는 이번 한 표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