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 천상병. “소풍”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그의 시 세계가 이번에는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다. 극단 철인이 2021년부터 이어 온 시인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재비再飛 : 새, 다시 날다가 12월 2일부터 7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김수영, 이상에 이어 천상병까지, 한국 문학사의 레전드 라인업을 한 편씩 무대로 소환해 온 프로젝트가 드디어 엔딩 크레딧을 올리는 셈이다.

철인의 시인 3부작은 말 그대로 “시인 월드뷰”를 무대에 구현하는 작업이다. 첫 작품 김수영, 외줄 위에서는 시대에 맞서 전부를 걸었던 시인 김수영의 삶을 복합문화공간 사유에서 선보였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전석 매진과 입석 관객으로 가득 찬 공연장은 거의 클럽 공연 현장에 가까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이 작품은 이후 대학로 스튜디오76 초청 앵콜까지 이어지며, 극단 철인의 이름을 알렸다.

두 번째 작품 이상, 기형, 13은 제목부터 이미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을지공간에서 올려진 이 작품은 이상 시인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극과 재즈로 풀어냈고,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이어 후암스테이지에서 열린 세 번째 희곡열전에 공식 참가해 우수 예술상까지 받으며, “시인 3부작” 브랜드의 위력을 증명했다.

이번 세 번째 작품 재비再飛 : 새, 다시 날다는 천상병의 이야기다. 국가 폭력 속에서 정체성을 잃고, 오랫동안 “바보 시인”으로 불리며 살아야 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풍 같은 세상을, 순수와 진실의 힘을 끝까지 노래했다. 이번 공연은 고문과 조사 장면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가 꿈꾸었던 세계, 그리고 상처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그리움을 조명한다.

극단 대표 곽유평은 이번 작품의 키워드로 “순수”를 굳이 꺼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성, 효율, 돈이 우선인 세상에서 순수는 종종 “바보 같다”는 말과 같은 급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그는 “순수의 가치가 낮아지면, 그와 맞닿아 있는 진실의 힘도 함께 무뎌진다”고 말하며, 천상병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단어들의 힘을 다시 불러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출 유연은 재비再飛 : 새, 다시 날다를 두고 “고통과 진실을 소리 높여 외치는 대신, 그가 그렸던 세상과 그리워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듣기보다는 보기를, 정보보다는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한 편의 발라드가 긴 설명 없이도 단 몇 줄의 가사와 멜로디로 마음을 건드리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감독 김민정은 천상병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장면에 담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음악에 담았다. 고문과 진료, 상처와 회복, 희망과 결실이라는 키워드를 따라가며, 장면마다 다른 정서를 입혔다. 그는 “요즘처럼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일제강점기와 독재 시기를 살아낸 시인의 언어를 무대로 옮기는 작업은 일종의 아트하우스 영화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대중성이 아닌 진정성, 즉 “믿고 따라갈 수 있는 한 사람의 세계관”이 작품의 힘이라는 의미다.

김수영, 이상, 천상병. 세 시인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완성되는 것처럼, 극단 철인의 시인 3부작은 연극계에서 꽤 묵직한 정규 앨범과 같은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 마지막 트랙인 재비再飛 : 새, 다시 날다는, 상처와 순수, 폭력과 소풍이라는 반대말이 한 무대에 공존하는 공연이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고, 가사 한 줄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이번 연말 대학로에서 그 “가사”를 연극으로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예매는 플레이티켓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