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와 한국대중음악상

[김원찬 칼럼]

김원찬 전문기자 승인 2021.02.19 14:43 | 최종 수정 2021.02.19 14:52 의견 0
김원찬 (뮤직컨설턴트, 칼럼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을 아십니까
2020년을 결산하는 대중음악상 시상식이 대부분 끝나고 단 하나 시상식만 남았다. 바로 ‘한국대중음악상’이다. 2004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18회째를 맞았다. 대한민국의 ‘그래미 어워드’를 모토로 탄생하여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있다.

그러나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도록 한국의 그래미는커녕 대중음악에 대한 정체성마저 모호해졌다. 선정위원들은 거의 변화가 없고 일각에서는 ‘대중음악평론가상’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2004년 이후 예술성이라는 신기루에 집착하던 한국대중음악상은 2010년 소녀시대가 부른 ‘Gee'를 올해의 노래에 선정하며 퍼포먼스 케이 팝에도 문호를 개방한다.

그 후 2016년 빅뱅의 ’BAE BAE'와 2019년 방탄소년단의 ‘Fake Love' 로 이어졌다. 그 결과, 초창기 한국대중음악상을 비토 했던 아이돌그룹 팬덤의 볼멘소리는 잠잠해졌고 지금은 일부의 평가지만 한해를 결산하는 음악상의 최종 도장 깨기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새다. 한국대중음악상을 좀 더 소개해 보자,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회에서 주관한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를 선정위원장으로 하여 64명의 전문가들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시상은 2019년 12월1일부터 2020년 11월30일까지 12개월 동안 국내에서 발매된 음반을 대상으로 하고 공식적으로 판매되고 유통 된 것이면 모두 심사대상에 포함한다. 시상분야는 총 3개 분야, 24개 부문으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악인] [올해의 신인] 등 종합분야 4개 부문과, [최우수 록 (음반, 노래)] [최우수 모던 록 (음반, 노래)]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음반] [최우수 팝 (음반, 노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노래)] [최우수 랩&힙합 (음반, 노래)] [최우수 알엔비&소울 (음반, 노래)] [최우수 포크(음반, 노래)]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재즈 (재즈음반, 크로스오버음반, 연주)] 등 장르분야 총 18개 부문, [공로상]과 [선정위원회 특별상] 등 특별분야 2개 부문이다.

미국의 [그래미 어워드]와 비교하면 한국대중음악상은 그래미의 부분집합이자 아류에 가깝다. 팝 음악장르를 그대로 갖다 놓아 특색과 차별점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에게 한국트롯은 대중음악이 아닌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중 필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아는 얼굴이 많지만 쓴 소리를 좀 해야겠다.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는 작년에도 10개의 각종음악상 시상식이 열렸다. 어떤 형태로든 트롯 장르가 시상에서 제외된 적은 없었다.

한국의 대중음악상이라면 대중가요 트롯이 포함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대중음악상은 18년째 트롯이 사라졌다. 우리가 미국의 대중음악을 따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대중음악 평론가상’이나 ‘음악 마니아상’이란 이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중’이란 단어를 상(賞) 이름에서 빼든지, 물론 소외된 음악장르를 오버그라운드로 불러내고, 장르 편중의 해소에 이바지한 긍정적 측면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선정위원회 내부에서도 치열한 토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초창기 표방했던 혁신이 선별적으로 작용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다. 이쯤에서 선정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선정위원 중에는 트롯분야의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명단에서 정체성과 취향이 잘 나타난다. 주로 음악평론가를 중심으로 음악전문지 필진과 학계, 그리고 방송 피디와 기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 군(群)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 들여 다 보면 종사 직종과 음악장르의 전문성이 상당히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연령층도 너무 젊은 쪽으로 쏠려있다.

이들이 가치로 내세운 대중음악에서 음악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 중에 상업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노래가 있는가.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최근의 트롯오디션 이전에는 트롯 장르도 인디음악이었다. 이제 겨우 변신의 물꼬를 텄다. 선정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의 트롯은 대중음악인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인식 전환 필요
트롯장르를 시상부문에서 아예 뺀 그들만의 리그인 한국대중음악상의 선정위원들은 트롯음악을 장르로 취급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안하지만 선정위원단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 트롯도 케이 팝과 마찬가지로 한국대중음악이다. 오히려 더욱 더 한국적 정서에 기반을 둔 우리 민족 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음악이다.

선정위원회측은 지난달 26일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트로트 곡을 의식적으로 배제하지 않았다”라고 전제하며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고 유행을 한다고 장르를 새롭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트로트 역시 팝의 장르로 포함해서 심사하고 있다. 음악적으로 주목할 만하다면 후보로 포함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선정위원회를 대표하는 올해로 18년째 선정위원장을 맡은 분의 트롯장르에 대한 인식이다. 음악적으로 주목한다는 그 주목(注目)의 기준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지난 18년 동안 트롯음악은 단 한곡의 주목받는 노래도, 단 한사람의 주목받는 가수도 없었다는 얘기 아닌가. 일례로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사랑받는 트롯가수 임영웅, 송가인과 트롯음악으로 음반을 50만장 이상 판매한 김호중은 주목의 대상도 아닌가. 뿐만 아니다. 지금껏 트롯가수는 대한민국 대중가요 100년사에 기여한 공로상 수상자 명단에 단 한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역대 공로상 수상자를 살펴보면 록과, 포크 그리고 재즈장르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공로상 가수 수상자는 포크싱어 8명, 록 보컬 4명, 재즈보컬 2명이 차지했다. 물론, 이들의 공로상 자격은 부인하는 건 아니다. 너무 치우친 장르 불균형을 지적하는 것이다. 적어도 올해는 공로상 수상자로 나훈아가 더 어울렸다.

코로나시대에 전 국민을 위로하고, 메시지가 주는 사회적 영향력과 무엇보다 자작곡으로 채운 그의 정규음반 [아홉이야기]의 음악적 완성도가 그렇다. 내년 공로상에 이미자는 또 어떤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대중음악이 대중과의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동안 트롯 경시에 대한 주변의 지적에 이들은 2005년 당시 장윤정의 ‘어머나’를 후보로 올렸던 단 한 가지 사례로 지금까지 변명한다. 트롯 장르에도 기존의 선정위원 못지않은 전문가들이 많다. 선정위원회 내부에 토론 대상이 없는데 토론과 투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랜 세월 정체된 내부부터 혁신하자.

한국 트로트의 현 주소는 어디쯤인가
트롯 홀대에 관한 몇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자. 소위 대중음악 전문가 집단이 2018년도에 공개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중에는 100년 역사의 트로트 음반은 단 한 장도 없다. 이쯤 되면 트로트장르에 대한 천시심리의 의심도 지울 수 없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작년 연말 지상파 3사의 연말결산 프로에서 KBS(가요대축제), MBC(가요대제전)와 SBS(가요제전)의 트롯의 푸대접은 변함이 없었고 아이돌 위주의 편성은 여전했다.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이 보기에도 트롯는 아직도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주류는 아닌 모양이다.

방송에서 만드는 트롯 오디션 같은 하향식 유행은 신기루와 같다. 이 한계에 대한 답을 한국대중음악상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기대가 컸으니까 쓴 소리도 하는 것이다. 선정위원회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심사를 주도하는 대중음악평론가의 책임과 역할은 중요하다, 요즘은 유튜브 등 매체의 발달로 수많은 음악정보가 공유되며 네티즌들의 수준이 뛰어나 대중음악평론가들의 역할이 모호해 진 측면이 있다.

과연 대중음악계에 진정한 비평가가 있느냐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 집단에 기대하는 것은 음악 산업의 에필로그와 프롤로그적인 전문가 식견 때문이다. 이들이 대중음악을 예측하고, 분석하고 비평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진단해 줘야 한다.

한국대중음악상 트롯장르 포함해야
옛 속담에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음악 생산자들이 대중보다 반걸음 앞서 가면 적어도 평론가 등 전문가군(群)은 한걸음은 먼저 내딛어 줘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음악인들은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이들이 외부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방송과 언론에서 균형을 유지할 때 한국대중음악은 편식되지 않고 고르게 발전할 것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음악적 성취를 선정기준으로 삼아 주류, 비주류 경계 없이 한국대중음악의 균형적 발전에 기여함을 설립취지로 했다.

마지막까지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심에 충실하기를 바라며 내년에는 트롯이 한국대중음악상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singer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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