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주년 맞은 뛰어난 가창력, 매력과 열정의 가수 송란 (1편)

-KBS 가요무대 40회 이상 출연한 실력파 가수,
-가요와 애견을 사랑하는 트롯가수 동아리 모임 "가사애사모"의 리더,
-사회봉사에 앞장선 환경운동가 송란.

김원찬 전문기자 승인 2021.01.01 02:30 | 최종 수정 2021.01.01 02:50 의견 0
KBS 가요무대 40회 이상 출연한 실력파 가수

경기 김포에 [송란 힐링하우스] 개소
얼마 전에 김포로 이사하여 신축 단독주택의 마지막 공사가 한창이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여섯 마리 개가 쏜살같이 달려든다. 이 친구들은 손님 낮도 가리지 않는다. 반려견이 두 마리이고 유기견 출신(?)이 네 마리라고 개부터 소개받았다. 개들이 아직은 바뀐 환경에 불안해서 대 소변 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 한다며 집주인 송란은 집안 구석구석 걸레와 휴지를 들고 따라 다닌다. 그의 안내로 집 안팎을 둘러봤다.

잘 가꿔진 온실 화초가 가득했고 지하에는 음악실과 그의 의상 작업실이 갖춰져 있었다. 자연인 송란의 발자취도 궁금해 졌다. 과연 인터뷰는 무사히 마칠 수 있을는지 개 여섯 마리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산만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의 지난 삶은 유년·청소년기와 환경운동 등 사회 활동가 시절 그리고 지금의 가수활동 등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KBS가요무대가 인정한 가수 송란
우선 가수활동을 돌아보자. 그는 2001년 가요계에 데뷔한 20년차 중견가수다. 2001년 데뷔 1집 타이틀곡 ‘괜찮아요’는 라디오방송 차트 3위안에 6개월간 랭크되며 데뷔 초부터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지금까지 6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가요계에서 노래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현재는 6집 앨범 타이틀곡 ‘송이 꽃’(김홍조 사,곡)으로 왕성히 활동 중이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목요일 오후’ (2집, 2003년), ‘내 사람’(3집, 2004년), ‘여자의 정’(4집, 2007년), 설중매(5집, 2013년)를 꾸준히 발표하며 음악적으로 다양성 변신을 꾀해 왔다. 송란은 개성있는 목소리로 음색과 톤을 다스리는 가창력이 탁월하다. 그의 목소리는 세련되고 깨끗하며 설레임이 있다. 저음, 중음과 고음에서 각각의 ‘에지(edge)'를 소유한 매력적인 가수다. 메조(mezzo) 음역대의 목소리에 애틋함과 쓸쓸함, 화려함과 섹시함을 함께 담아낸다. 음악적 프리즘도 다양하고 넓다. 록발라드에 트로트와 민요에 이르기까지 그의 데뷔 20년 가수 여정이 말해준다. 특히, 빅밴드에 바탕을 둔 팝 가요 는 일품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트롯가수들의 로망인 KBS '가요무대’를 데뷔 이래 40회 이상 출연하며 그의 음악성을 입증해 왔다. ‘화류춘몽’과 ‘호들기의 꿈’ 에서부터 ‘산장의 여인’과 ‘9월의 노래’ 까지 출연 곡의 폭넓은 소화력은 가요무대에서 단골로 찾는 이유이며, 실력, 외모, 퍼포먼스, 인성, 매니지먼트를 두루 갖춰 벌써 전 국민이 알았어야 될 가수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노래가 대중보다 앞서가고 곡 해석이 트롯 팬 층에 맞추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주요 포털에는 프로필이 바로 지식백과에 등록된 객관적으로 검증된 가수이며 400여명의 진성 팬들이 그의 팬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내년에는 송란의 옛 가요 시리즈로 ‘송란, 추억의 옛 노래 40선(選)’ 출시를 앞두고 있다.

Q. 본인 발표 음반 만족도,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
A. “성숙하면서도 감성적이고 진중한 스타일이라 오히려 기성곡이 더 잘 어울린다. [미야코 하루미] 같은 엔카 가수 노래를 좋아한다. 초기 [신촌블루스]와 음악성이 맞다. 음반은 발표 후 늘 아쉬움이 남는다. 소화하는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어 오히려 나의 장점을 못 찾는 경향이 있다.“
Q. 방송을 KBS가요무대에 집중하는 이유.
A. “가요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가수’ 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송란 음악은 이 프로가 맞다. 다양한 장르의 소화 능력으로 방송에서 자주 부르는 것 같다. 일례로 ‘화류춘몽’ 같은 곡 은 담당PD의 요청으로 같은 프로에서 두 번씩이나 불렀다.“

경기 김포에 신축한 송란 힐링 하우스 전경

그는 서울태생으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학사가수다. 어머니가 김포 토박이로 아직 김포에 거주하고 계셔서 김포로 이사하게 되었다는 그는 이곳이 어머니의 숨결을 느끼는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어머니는 김포경찰서 1기생 여자경찰 출신이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통일원 교수로 재직하시며 김포시 민방위본부 교수로도 지역 사회봉사에 열중 하셨다. 시아버지는 우리나라 선염(先染, 니트 산업) 창시자로 대표기업 삼아염직을 경영하셨다. 올곧은 집안에서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은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Q.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어땠는가.
A. “부친은 보수적이었고 가정교육이 엄했다. 심부름 잘하고 살림 잘하는 착한 아이였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조숙했으며 인성을 소중히 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늘 주변을 먼저 챙긴다. 동료가수들의 불이익은 참지 못하고 어려움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많은 봉사단체 활동과 사회봉사 이력이 이를 대변한다. 기자가 직접 겪은 일화도 있다. 기자가 가수단체 실무책임을 맡고 있던 2010년, 당시 원로가수 한명숙님이 헌정음악회에서 입을 무대 의상을 맞춤복으로 제작하여 기증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직접 모시고 의상을 맞추고 공연 당시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한 그의 헌신을 아직도 기억한다.

환경단체에서 폐품 재활용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직접 리폼에 관심을 갖게 되며 의상디자인을 독학으로 습득했다. 그의 아이디어로 직접 수장식(手裝飾)을 만들었고 지금은 ‘의류 수장식 아티스트’로 가요계 뿐 만아니라 의류업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송란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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