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건 모두 악기가 된다 - 가락쟁이 박문수

엄태웅 기자 승인 2021.08.12 02:25 의견 0

성인가요 가수로 시작한 음악인생 '가락의 달인으로 거듭나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개그맨 김정렬의 숭구리당당 숭당당으로 시작하는 개다리춤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그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다리로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며 여러 가지 코믹한 동작과 함께 “숭구리당당 숭당당 수구수구당당 숭당당 자가잔자가잔 잔자가잔 자가자가잔잔 짠짠”이라는 주문을 외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어느덧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숭구리당당’은 40대 이상의 중·장년들을 유년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呪文)이 되었다.

그 숭구리당당의 이름을 내건 포장마차가 우리 부천에서 성업 중이다. 벽에 메뉴판도 붙어있고 탁자 위에 막걸리 주전자도 놓여 있어서 술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사실은 술집이 아니고 BCB 부천방송에서 진행하는 음악토크쇼 프로그램이다. 매주 월요일 밤 9시부터 가수 한 사람, 주로 트로트 가수를 초대해서 70분 동안 노래도 듣고 인생이야기도 나눈다. 페이스북과 아프리카TV에서만 생방송을 볼 수 있고 유튜브로는 녹화방송만 제공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구독자가 7천 명을 넘어갈 정도로 인기가 좋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의 출연 요청이 쇄도해서 벌써 5월 스케줄까지 다 잡힌 상태다.

가수의 꿈을 접고 가락쟁이로 거듭나다

<숭구리당 포차>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특별해 보이는 악기 하나가 눈에 띈다. 바로 진행자 앞에 놓여 있는 장구가 그것이다. 대중가요와 장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은데 첫 방송 때부터 거의 100회가 다 돼가는 지금껏 진행자는 매번, 가끔은 장구 대신 꽹과리나 주걱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장구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 이번 회의 주인공은 <숭구리당 포차>의 진행자이자 장구, 북, 꽹과리 등 전통 악기를 이용하여 대중가요는 물론 팝 연주에까지 도전하는 가락쟁이 박문수 명인이다.


송내동에 있는 BCB 부천방송에서 박문수 명인을 만났다. 지금은 음악토크쇼 진행자로 또 실전 반주 가락 연구회(어울림 예술단) 단장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젊은 시절 그의 직업은 가수였다. 1983년 군 제대 후 <빨간 구두 아가씨>를 부른 가수 남일해 선생에게 노래를 배워 가수로 데뷔했다. 요즘과 달리 그 당시만 해도 가난한 무명 가수에게 자기 노래 한 곡 갖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밤무대를 전전하다 생계를 위해 학원에서 한 십여 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가수로 돌아와 관심을 가진 것이 우리 풍물 가락이었다. 그는 직접 <실전 반주 가락 연구회>를 만들어 북, 장구, 꽹과리 등 전통 악기로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어울림 예술단>을 만들어 지금껏 공연과 후학 지도를 병행해 오고 있다.


“북이나 꽹과리 장구는 구시대의 악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음악에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한 훌륭한 악기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 전통 악기를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접목하는 일입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 가진 고유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그 악기는 죽은 악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악기가 되는 거죠. 특히 장구는 어떤 타악기보다 다이나믹하고 다양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타악기입니다.”

향기네 무료급식소와의 인연

송내역 남부광장에서 중동역 방향으로 약 100미터 지점에 부천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향기네 무료급식소가 있다.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매일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이 급식소는 약 20여 년 전 이곳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하던 임성택 대표에 의해 시작되어, 지금껏 국비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모든 운영비를 자체 충당하고 있는 부천의 대표적 비영리 봉사단체이다. 이 단체의 한 달 운영비 8백여만 원은 후원금과 회비, 그리고 향기네 후원 가수들의 모금 활동으로 충당된다. 향기네 후원 가수들은 벌써 10년째 매주 토요일 모금 활동을 위한 콘서트를 개최해 오고 있는데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콘서트가 지속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 데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박문수 명인의 공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송내 북부역 광장에서 가장 먼저 1인 모금 공연을 펼쳤던 인물이다.

“14~15년 전에 우연히 임성택 대표를 알게 됐는데 아무 사심 없이 사재를 털어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임성택 대표의 어머니께서도 소사동 쪽에서 음식점을 하셨는데 마찬가지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급식 봉사를 하셨고, 또 부인과 자녀들 역시 봉사하는 마음이 몸에 밴 것을 보고 정말 임성택 대표를 만난 게 큰 영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 저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혼자 모금 공연을 시작하게 됐죠. 그 후 여러 선후배 동료들이 뜻을 같이해서 지금은 정말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봉사단체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향기네 무료급식소에서는 일 년에 두 번, 5월과 10월 둘째 토요일 대규모 경로잔치를 여는데 약 1,500여 명의 어르신이 참여하는 이 행사에서도 그와 동료 가수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앞으로의 꿈, 그리고 하고 싶은 말

코로나바이러스 19의 영향으로 매주 토요일 진행되던 야외 모금 공연이 취소되면서 모금 수입은 줄어드는데도 급식 수요는 갈수록 느는 추세다. 얼마 전까지 하루에 150개씩 포장을 하던 도시락을 170개로 늘렸지만, 그마저도 모자라서 식사도 못 하고 그냥 돌아가는 어르신들이 많다. 다행히 BCB 부천방송을 방송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모금 공연을 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급식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로는 <실전 반주 가락 연구회>를 통해서 우리 가락, 우리 악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모색해나가고 싶고, 또 <숭구리당 포차>를 우리나라 트로트 가수의 등용문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향기네 무료급식소를 위해서도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야죠.”

우리 가락과 악기에 대한 그의 관심과 노력도 대단하지만,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선의와 봉사의 마음가짐 또한 인터뷰 내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빈다. 끝으로 박문수 명인의 음악 세계는 유튜브 <가락의 달인 박문수 TV>를 통해 볼 수 있다. 향기네 무료급식소 후원은 다음 카페, 또는 페이스북 <향기네 무료급식소>를 방문하기 바란다.

[자료제공] 현해당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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